고작 1년 만에…파인우븐 케이스 어디로?
지난해 9월, 애플은 아이폰 15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파인우븐’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이용한 다양한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파인우븐은 마이크로 트윌이라는 직물 소재로, 스웨이드 가죽처럼 부드러운 질감과 은은한 광택을 낸다. 당시 이러한 장점과 함께 소재의 68%가 재활용된 것이라며,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가죽 소재를 대체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애플은 이후 그간 가죽으로 만들었던 여러 액세서리를 파인우븐으로 대체했다. 아이폰 가죽 케이스, 맥세이프 가죽 카드 지갑, 애플워치 가죽 마그네틱 스트랩 등 많은 인기를 끌었던 기존 가죽 제품이 파인우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파인우븐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처참한 내구성으로 인해 출시 직후부터 큰 혹평을 받았다.
파인우븐 케이스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 애플은 신제품을 선보이며,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품 액세서리를 업데이트한다. 이번 아이폰 16 시리즈를 발표할 때도 똑같았다. 회사는 아이폰 16 시리즈의 특장점, 개선점 등을 소개하며, 전용 케이스 몇 가지도 공개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현재 발표된 액세서리 중에 파인우븐으로 만들어진 케이스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포착한 다수 외신은 곧바로 소식을 전했다. 9월 10일(현지시간) 미국 IT 매체 더 버지(The Verge)는 애플이 파인우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애플은 이번 아이폰 16 시리즈 전용 파인우븐 케이스를 공개하지 않았고, 기존 공식 웹사이트에서 아이폰 15 시리즈용 파인우븐 케이스를 제거했다.
실제 미국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서 파인우븐 케이스의 흔적이 사라졌다. 새로 업데이트된 아이폰 16 시리즈용 케이스는 실리콘 케이스, 맥세이프 클리어 케이스가 전부다. 여기에 아직 홈페이지에서 볼 수 없지만, 애플이 별도 발표한 비츠(Beats) 케이스까지 더하면 아이폰 16 시리즈용 케이스는 현재 총 3종이다. 참고로 비츠는 애플이 인수한 헤드폰 브랜드다.
실리콘 케이스는 제품 겉면을 부드러운 실리콘 소재로 둘러싼 제품으로, 아이폰 케이스 중에선 오랜 스테디셀러다. 맥세이프 클리어 케이스는 투명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뒷면에 맥세이프 전용 자석이 붙어있는 게 특징이다. 비츠 케이스는 이번에 처음 선보인 제품인데 색을 입힌 플라스틱 소재로 보이는데, 긁힘 방지 코팅이 돼 있다고 한다.
참고로 모든 파인우븐 소재 액세서리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이폰용 맥세이프 파인우븐 지갑은 남아 있다. 이는 아이폰 뒤에 붙여서 사용하는 카드 지갑이다. 파인우븐 소재 에어태그 키링도 있다. 그러나 애플이 파인우븐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체는 “파인우븐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오래 지속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파인우븐, 무엇이 문제였길래
애플이 아이폰 16 시리즈 파인우븐 소재 케이스를 내놓지 않더라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파인우븐 소재는 출시 직후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파인우븐 소재로 만들어진 케이스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흠집이 났다. 예를 들어 손톱으로 누르면 그대로 자국이 났다. 거친 물체로 긁으면 그대로 흠집이 나고 복원되지 않았다.
가죽의 경우 겉에 상처가 나더라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흠이 작으면 시간이 지나며 다른 흔적과 동화된다. 동물의 피부로 만든 소재이기 때문이다. 또 가죽은 사용자 손에서 나는 땀을 흡수하면서 색이 변하는데, 가죽을 좋아하는 사용자들은 이를 멋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빈티지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파인우븐은 가죽의 이러한 특징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조금만 사용하면 겉에 보풀이 일어나는 등, 계속 내구성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비싼 가격도 문제로 거론됐다. 당초 가죽을 대체하기 위해 애플이 선택한 소재이기에, 기존 가죽 액세서리와 같은 가격을 받았다. 결국 많은 사용자들이 파인우븐에 등을 돌렸고, 일각에서는 ‘가장 큰 실패작’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파인우븐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지난 4월, 애플이 파인우븐 사용을 중단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당시 IT 팁스터(정보유출가) 코스타미(Kosutami)는 파인우븐 내구성이 좋지 않아 모든 생산 라인이 중단됐다며, 애플이 다른 소재로 전환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스타미는 파인우븐 도입을 미리 예고한 팁스터로, 이 분야에서 만큼은 믿을 만한 인물이다.
빗나간 애플의 전략
파인우븐을 앞세운 애플의 전략은 실패했다. 애플은 파인우븐의 친환경성을 앞세워, 이를 성과로 삼으려 했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애플은 지난해 9월 친환경 경영 성과 중 하나로 파인우븐을 언급했다. 당시 회사는 “애플은 “파인우븐 소재 사용으로 탄소 집약도가 높은 가죽을 사용할 때보다 탄소 배출량이 크게 줄었다”고 자랑했다.
특히 애플은 파인우븐 액세서리가 환경과 멋을 챙기는 새로운 소재라고 홍보했다. 적어도 일부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가죽 액세서리와 비슷한 느낌을 구현하는 데는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애플은 모바일 기기 특성상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외부 충격에 노출돼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품질에 깐깐한 애플이 왜 내구성을 챙기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가죽 다시 돌아오나
아쉽지만 애플이 파인우븐을 포기하더라도 다시 가죽 소재를 사용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애플은 파인우븐을 내세우며 자사 제품에서 가죽 소재를 없앴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을 내세우며 가죽을 대체할 소재를 가져왔는데, 혹평을 받았다고 해서 다시 가죽을 사용하는 일은 과거 스스로의 발언을 무시하는 셈이다.
파인우븐 단종설이 나돌던 때 애플이 알칸타라와 같은 가죽 대체 소재를 사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알칸타라는 스웨이드 느낌의 합성 섬유다. 아이폰 16 출시 전, 애플이 인조 가죽으로 만든 액세서리를 선보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애플은 인조 가죽 역시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듯하다. 이와 비슷한 소재를 다시 도입할지 불분명하다는 것.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굳이 애플 정품 아이폰 케이스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서드파티 제품을 구매하면 그만이다. 서드파티 제품은 정품 대비 절반 이하 가격에 판매되며, 브랜드만 잘 선택하면 품질도 나쁘지 않다. 일부 제품은 정품에서 아쉬운 점을 개선해서 나오기에, 시간을 갖고 타사 제품을 기다리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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