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로 바뀌면 디자인부터 낯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릴을 막고 조명을 잔뜩 넣다 보니 원래 그 브랜드를 좋아했던 사람조차 “굳이 이렇게까지 바꿔야 하나” 싶을 때가 있죠.
그런데 9월 2일 공개된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은 정반대로 갔습니다.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저도 EV 배지를 찾기 전까지 일반 레인지로버와 차이를 바로 알아채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게 이번 차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전기차 티를 내지 않은 게 오히려 새롭다
외관에서 달라진 부분은 공기 흐름을 다듬은 전면 그릴과 전용 휠, 하부 설계 정도입니다. 각진 차체와 짧은 앞뒤 오버행, 보닛 위 레터링, 세로형 테일램프는 그대로 남겼습니다. 전기차를 만들면서 새로운 얼굴을 억지로 붙이지 않고, 이미 값어치가 증명된 레인지로버의 비율을 지킨 것입니다.
실내도 전기차라는 이유로 거대한 화면을 새로 붙이거나 조작 방식을 통째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소음 구동계와 방음 접합 유리,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으로 원래 조용했던 공간을 더 조용하게 다듬었습니다. 처음 타는 순간보다 오래 탈수록 차이가 느껴질 변화에 가깝습니다.
전기차는 미래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공식도 있지만 레인지로버급 럭셔리 SUV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저는 비싼 차일수록 새로움보다 “누가 봐도 그 차”라는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은 충전구가 있다는 이유로 품격을 새로 증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조용해졌는데 힘은 V8급이다
앞뒤에 각각 260kW 모터를 넣어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850Nm를 냅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5초가 걸립니다. 118.5kWh 배터리를 탑재했고 주행거리는 WLTP 기준 최대 600km, 제조사가 제시한 실주행 예상치는 535km입니다. 국내 인증거리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숫자만 보면 빠른 전기 SUV지만, 이 차의 진짜 장점은 가속력이 아닐 것 같습니다. 원래도 조용하고 부드러운 차였는데 엔진 진동과 변속 충격까지 사라집니다. 전동화가 레인지로버의 성격을 바꾼다기보다, 원래 잘하던 정숙함을 더 밀어주는 방향입니다.
22분 충전, 물은 90cm까지 건넌다
최대 325kW 급속충전을 지원해 배터리 10%에서 80%까지 약 22분이 걸립니다. 10분 충전으로 WLTP 기준 220km를 더할 수도 있습니다. 최대 도강 깊이는 900mm, 견인 중량은 2,500kg입니다. 전기차가 됐다고 도심 호텔 앞에만 세워두는 차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노면 상태에 따라 모터를 50밀리초 단위로 제어하고, 원페달 주행으로 최대 45도 경사도 오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 오너가 이 기능을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지만, 오프로드 능력을 장식처럼 남겨두지 않았다는 점은 레인지로버답습니다. 배터리 보증은 8년 또는 16만km입니다.
다만 118.5kWh라는 거대한 배터리는 충전비와 차량 무게에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효율 좋은 전기차를 찾는 사람보다, 레인지로버를 사고 싶은데 전기 구동을 원했던 사람에게 맞는 차입니다.
국내에는 언제, 얼마에 나올까
국내에서는 2026년 9월부터 주문받고 2027년 중순 공식 출시할 예정입니다. 스탠더드 휠베이스 오토바이오그래피와 롱 휠베이스 SV 두 가지가 들어옵니다. 영국 시작가는 15만4,070파운드지만 국내 판매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하얀북극곰의 최종 정리
레인지로버 일렉트릭은 전기차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얼굴은 지키고, 소음과 진동을 줄이며, 550마력과 600km 주행거리를 안쪽에 숨겼습니다.
저는 이 방향이 맞다고 봅니다. 레인지로버를 사는 사람이 원하는 건 새로운 전기차 한 대가 아니라, 익숙한 품격을 전기로도 그대로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국내 가격이 3억 원을 훌쩍 넘긴다면 디자인만으로 모든 고민이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이 정도로 원형을 지킨 전기 레인지로버라면 V8 대신 선택할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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